슬픈 약속
우리에겐 약속이 없었다.
서로의 눈빛만 응시하다
돌아서고 나면 잊어야했다.
그러나
하루만 지나도
어김없이 기다려지는 너와의 우연한 해후.
그저 무작정 걸어봐도
묵은 전화수첩을 꺼내 소란스럽게 떠들어봐도
어인 일인가,
자꾸만 한쪽 가슴이 비어옴은.
수없이 되풀이한 작정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고
네가 닿았음직한 발길을 찾아나선다.
머언 기약도 할수 없다면
이렇게
내가 길이 되어 나설 수밖에.
내가 약속이 되어 나설 수밖에.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걸어야 내 그리움의 끝에 닿을 것인지
걸어서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밤새도록이라도 걷겠지만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다 버리고 나는 마냥 걷기만 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도 그냥 건성으로 지나치고
마치 먼 나라에 간 이방인처럼 고개 떨구고
정처없이 밤길을 걷기만 했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지만
짧은 이별일지라도 나는 못내 서럽습니다.
내 주머니 속에 만지작거리고 있는 토큰 하나,
이미 버스는 끊기고 돌아갈 길 멉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걸어서 그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대의 마음으로 갈 수 있는 토큰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나는 내 부르튼 발은 상관도 않을 겁니다.
문득 눈물처럼 떨어지는 빗방울,
그때서야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아아 난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 온 몸이 폭싹 젖은 걸로 보아
진작부터 비는 내리고 있었습니다.
떠나는 이유
떠나는 사람에겐 떠나는 이유가 있다
왜 떠나는가 묻지 말라
그대와 나 사이에 간격이 있다
그것이 무언인지 묻지 말라
괴로움의 몫이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무도 알지 못하지
내 가슴 깊숙이 자리한 나뭇잎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
기다림으로 제 한 몸 붉게 물들이고
끝내는 싸늘한 땅으로 떨어지고야 마는
한 잎 나뭇잎, 그 나뭇잎을 알지 못하지.
내 마음을 흔들고 지나간 한 줄기 바람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
다시 온다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가버린 그대, 내 뼈 속 깊이
아픔으로 박혀 있는 그대를 아무도 알지 못하지.
한 줄기 바람으로 스쳐 지나간 그대를
아무도 알지 못하지.
그대에게 가자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수년간 떠돌던 바람,
여지껏 내 삶을 흔들던 바람보다도 더 빨리.
어둠보다도 더 은밀하고 자연스럽게.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차창가에 어리는 외로움나 쓸쓸함,
다 스치고 난 후에야
그것들도 내 삶의 한 부분이었구나,
솔직히 인정하며.
가자, 밤열차라도 타고.
올 때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으면
내가 먼저 찾아 나서자.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지 말고
두 팔 걷어부치고 대문을 나서자.
막차가 떠났으면 걸어서라도 가자.
늘 내 가슴속 깊은 곳
연분홍 불빛으로 피어나는 그대에게.
가서, 기다림은 이제 더 이상
내 사랑의 방법이 아님을 자신있게 말하자.
내 방황의 끝, 그대에게 가자.
소중한 까닭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당신이 내게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신과 내가 함께 나누었던 그 시간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을 생각하느라 지새운 밤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까닭이다.
내 마음의 악마
내 불행의 시작은
너를 알고부터 비롯된 게 아니고
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네.
아아 어찌 용서받을까.
내 탐욕의 마음이여, 몸뚱어리여.
진실로 진실로 너를 가질 수 있음은
진정 너로부터 떠나는 데
있는 것인데.
씻은 듯이 아물 날
살다 보면 때로
잊을 날도 있겠지요.
잊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무덤덤해질 날은 있겠지요.
그때까지 난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것입니다.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간직하기 위해서.
살다 보면 더러
살 만한 날도 있겠지요.
상처받은 이 가슴쯤이야
씻은 듯이 아물 날도 있겠지요.
그때까지 난
함께 했던 순간들을 샅샅이 끄집어내어
내 가슴의 멍자욱들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그대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대를 원망해서도 아니라
그대에 대해 영영
무감각해지기 위해서.
비겁 2
실상내가책임질일은아무것도없다
길바닥에엎드려동전을구걸하고있는그누구도
인건비는커녕본전조차뽑지못해한숨짓는그누구도
오갈데없이집이헐려한겨울추위에떠는그누구도
날마다먼하늘만쳐다보며한숨짓는그누구도
내가모르는가운데나로인해눈물을흘리는그누구까지도
모두가다내책임은아니다
내가책임질수있는일은아무것도없다
밖을 향하여
동굴을 지나온 사람이라야 동굴을 안다
그 습하고 어두운 동굴의 공포
때로 박쥐가 얼굴을 할퀴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벌레가 몸에 달라붙어
뗄래도 떨어지지 않게 꽉 달라붙어
살점을 뜯고 피를 빨아먹는 으으 이 끔찍함!
발을 헛디뎌 수렁에도 빠졌다가
깨진 무릎 빠진 손톱으로 기어서 기어서라도
동굴을 지나온 사람이라야 동굴을 안다
동굴 밖 햇빛의 눈부심을 안다
멀리서만
찾아나서지 않기로 했다.
가기로 하면 가지 못할 것도 아니나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그리움만 안고 지내기로 했다.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대가 많이 변했다니
세월따라 변하는 건 탓할 건 못 되지만
예전의 그대가 아닌 그 낭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멀리서 멀리서만
그대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이별하는 것들이 그렇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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